사회적 판단이 객관적으로 중요하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적 판단에 관한 인지적 착각과 오류가 흔하게 발생한다.
그래서 나중에 잘못한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이미 많은 정보를 인지한 상태에서는 이를 무시하기 어려운 경향을 조심하여야 한다.
A회사와 B회사 중 어디에 취직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두사 모두 급여는 같다.
내가 두 회사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한 친구가 말하기를 A회사 사람들은 함께 어울리기 어렵고, 그 회사의 경영진을 상대로 성희롱 소송이 몇 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A 회사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어울리기 힘들다는 사람은 누구인지, 성희롱 소송에 휘말린 사람은 누구인지 생각하게 된다.
며칠 후 다시 그 친구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그 친구가 미안하다고 한다.
A회사를 이름이 비슷한 다른 회사로 착각했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 결론을 내릴 때 끌어들였던 증거들은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하지만 수십 건의 실혐으로 입증된 바에 따르면, 잘못된 것인 줄 몰랐던 애초의 지식은 잘못된 것을 알고 난 후에도 오래도록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이미 인지된 잘못된 정보를 리셋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변호사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때문에 배심원이나 판사의 마음속에 거짓된 생각의 씨앗을 심어놓는 경우가 많다.
반대 측 변호사가 이의를 제기하고 나면 판사가 '배심원단은 마지막 변론은 무시하기 빼달라'라고 경고하지만, 이미 머릿속에 자리 잡은 인상과 판단에 영향을 다시 돌리기에는 이미 늦다.
이에 대한 또 하나의 생생한 사례를 들어보려 한다.
심리학자 스투어트 발란스의 또 다른 실험을 들여다보자.
이 실험은 1960년대에 진행되었던 만큼 세월이 많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실험이 제공하는 결과는 상당히 의미가 있다.
평균적인 남자 대학생들이 여성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는지 알아보는 상담을 한다고 알려주고서 남자 대학생들을 실험실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남성들을 의지에 앉힌 다음 판에 전극을 연결하고 가슴에 마이크를 달았다.
실험자는 참가자들에게 전극과 마이크는 한 번에 한 장씩 보여줄 성인잡지 표지모델사진에 반응하여 나타나는 생리학적 흥분을 측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각각의 참가자는 다른 참가자들과 똑같은 사진들을 보았지만 순서가 달랐다.
스피커로 참가자의 심장박동 소리가 흘러나왔다.
참가자는 실험자가 보여주는 사진을 한 장씩 바라보았고 여성의 사진이 얼마나 매력적이라 생각하는가에 따라 심장박동이 빨라지거나 느려졌다.
참가자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들의 팔에 연결된 전극과 가슴에 단 마이크는 스피커와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이것은 모두 속임수였다.
참가자들이 자신의 심창박동 소리라 여겼던 것은 사실 신시사이저의 음향을 테이프에 녹음해 놓은 소리였고, 심장박동 속도의 변동폭은 실험자가 미리 설정해 놓은 것이었다.
실험이 끝나자 실험자는 심장박동 소리가 사실은 참가자의 삼정박동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음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참가자에게 테이프 녹음시스템을 보여주고, 가슴의 마이크와 팔의 전극이 그 어디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이것은 참가자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잠시 동안 참가자는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생리반응이 자신이 특정 여성에게 더 큰 매력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인상을 주었던 증거는 완전히 무효가 되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성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할 경우 자기가 받은 인상을 지워버리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를 신뢰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실제는 이와 달랐다.
참가자에게 주어진 정보가 거짓된 것 일을 알린 다음 실험 참가에 따른 포상이 주어졌다.
실험자가 감사의 표시로, 실험에서 봤던 성인잡지 중에서 표지가 마음에 드는 것을 가져가도 좋다고 한 것이다.
이 남학생들은 과연 어떤 표지를 선택했을까?
놀랍게도 이들은 스피커에서 심장박동 소리가 가장 빠르게 흘러나왔을 때 본 사진을 골랐다.
모든 증거가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한때의 그 믿음이 계속 남아서 그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 것이다.
발린스는 이런 일이 일어나게 만든 메커니즘이 '자기 설득'이라 설명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근거로 믿음을 만들어낸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하는 생리적 상태와 일관성 있는 믿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상당한 인지적 노력을 기울인다.
일단 그렇게 한 다음에는 이 과정의 결과가 비교적 오래 지속되어 변화에 저항한다.
하지만 이것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되는 판단의 오류다.
니컬러스 에플리(NIcholas Epley)는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우리 믿음의 구성방식, 그리고 그 구성에 이르기까지의 정신적 과정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증거가 분명하게 무효화되었는데도 그 믿음이 지속되는 것이다.
믿음 보존 편향은 험담과 관련된 일상생활에서도 나타난다.
물론 험담은 최근에 등장한 것이 아니다.
사람에 대한 험담은 문자로 기록된 가장 오래된 인간의 기벽 중 하나로, 구약성서와 문자의 여명기부터 내려온 고대 문헌에도 기록되어 있다. 인간은 여러 가지 이유로 험담을 즐긴다.
자신감이 떨어지다가도 남들을 힘담하면 자기가 그들보다 우월한 기분을 느낀다.
험담은 충성심을 시험해서 타인과의 유대를 강화하는데 도움을 준다.
만약 내가 철수를 험담하는데, 영희가 거기에 맞장구를 치며 끼어든다면 영희를 동지라 믿는 식이다.
험담의 문제는 그 내용이 거짓일 수 있다는 점이다.
험담이 여러 귀와 입을 거치는 동안 모두들 거기에 한 마디씩 보태거나 뺀 경우에는 특히나 그렇다.
믿음보존 편향이 작용하는 탓에, 노골적인 거짓말이나 사실의 왜곡에서 발생하는 잘못된 사회적 정보를 근절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리고 이런 말도 안 되는 험담의 피해 당사자가 되고 나면 경력이나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기도 무척 어려워진다.
우리의 뇌는 귀인오류를 범하는 선천적 기질이 있고, 험담을 즐기기 때문에 사회적 판단을 합리적으로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늘 객관화하고, 바로 잡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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